『끝과 시작』의 그림을 만들며 늘 상상했다. 언젠가 이 책 속의 상징적 장면을 실제 공간으로 재현해보고 싶다고. [파주 한 권 마켓]에 이어 [공주 책방, 잇다]의 초대로 이 컨셉의 전시를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끝과 시작』은 나의 두 번째 책이자, 나로 하여금 내 인생을 사랑하게 해준 책이다. 살아오며 실수와 실패가 남긴 얼룩들을 부끄럽게 여긴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작업을 이어가며 알게 되었다.

"어쩌면 그 얼룩 하나하나가 모여 
나만의 고유한 무늬를 이루는 건 아닐까.
큰 그림에서 보면 
모든 경험은 제 자리를 갖고, 쓰일 구석이 있지 않을까."

이 책은 독자가 자기 인생을 더 긍정하고, 더 다정하게 사랑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나를 몰아세우지 않고, 스스로에게 친절할 수 있도록 돕는 작은 도구가 되기를. 기꺼이 독자들을 위해 쓰이길 바란다.

『끝과 시작』의 내지는 앞면에 삶의 시간이 수평으로 흐른다. 뒷면에는 새로운 축으로 넘어가 수직으로 이어지는 죽음 이후의 여정을 그려 '삶과 죽음의 순환'을 구조화했다. 우주의 표지가 내지를 감싸 삶과 죽음을 동시에 안아 올린 형태로, 한 권 안에서 응축된 사유의 경험이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그리고 유한한 듯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반짝이는 별의 시간을 살고 있을지 모른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표지의 모래시계 모래알 부분에 은박 후가공을 더했다.
아코디언 제본으로 펼쳐지는 그림책 속에는 빨간 테이블보가 깔린 긴 식탁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화병의 꽃과 과일, 모래시계, 양초 등 바니타스(Vanitas)를 상징하는 오브제가 올려져 있고, 양 끝에는 여자아이와 할머니가 마주 앉아 있다. 고양이는 식탁 위를 자유롭게 지나다닌다. 이 장면의 일부를 책방의 테이블에 구현해, 관람객이 책 속 세계로 걸어 들어오는 감각을 경험하도록 꾸미기로 했다.


전시를 위해 OXX Floral Studio에 꽃을 의뢰했다. 그림책의 컨셉 재현을 기반으로 최대한 오래 가고, 지는 모습까지도 아름다운 꽃들로 구성해달라는 디렉션만 주고 믿고 맡긴다. 매번 생각지도 못했던 꽃들을 받는 기쁨이 있는데, 회화 전공을 했던 플로리스트라 그런지 대담한 색감 사용이 조화롭고 아름답다.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꽃은 서서히 시들 것이다. 그 변화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려 한다. 유한하기에 더 아름답고 소중한 삶을, 시각-후각-촉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공간의 온도와 습도에 따라 꽃들이 어떻게 모습을 달리할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그 또한 시간의 몸짓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시간의 결을 시각화하고자 한다.

1. 파주 페어 한 권 마켓 (2025.10.24. - 10.26.)
OXX pick 꽃 리스트
밀렛, 파스타 거베라, 아주까리(피마자), 맨드라미(노란색), 안스리움, 호접(흰색), 네리네(핑크)

2. 공주 책방, 잇다 원화 전시 (2026.04.09. - 05.31.)
OXX pick 꽃 리스트
안스리움, 덴드론, 오이초, 골든볼, 낑깡, 덴드로비움, 거베라, 골든볼, 울리부쉬

관람객 참여 프로그램으로 [나의 끝과 시작] 코너를 마련했다. "인생의 마디마다 만나는 크고 작은 끝 뒤에는 언제나 새로운 시작이 있다"는 화두 아래, 각자의 이야기를 적어 붙이고, 서로의 사연을 나눌 수 있다. 관람객들이 작성할 때 힌트를 얻을 수 있도록 예시로 그간 받아왔던 응답을 같이 비치한다.
응답은 하얀색 종이 위에 쓰는 대로 뒷장의 연분홍 종이에 그대로 복사가 되는 감압지로 제작해 한 장은 공간에 남기고, 한 장은 참여자가 가져갈 수 있도록 한다. 연분홍 종이는 벚꽃잎처럼 차곡차곡 겹쳐지고, 전시는 시간이 흐를수록 모두의 이야기로 피어나는 풍경이 될 것이다. 이 목소리들을 수집하고 엮어 차후 Zine을 만들거나 다른 매체를 통해 공유할 예정이다.
 이 전시의 목표는 부스나 공간에 머무는 동안 오래 남을 기억을 선물하는 일. 이 전시는 얼마간 머물다 사라지겠지만, 어쩌면 사라지기에 더 아름답다. 그 이후 공간들도 또다른 시작을 맞이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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